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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프랑스 카페 형성의 모체가 된 ‘살롱(Salon)'

기사승인 2019.02.25  15: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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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 커피를 사랑하는 나에게 ‘프랑스’라는 국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의 역사 깊은 카페들이다. 프랑스의 카페 문화를 상상해보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에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신선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들이 상상된다. 이러한 상상은 흡사 프랑스의 살롱을 떠오르게 한다. 살롱하면 왠지 귀부인들의 소소한 사교모임이 떠오른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살롱과 실제로 카페 형성에 모체가 된 살롱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살롱은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궁정에서 개최한 것을 시초로 이후 점차 귀족들의 저택으로 옮아갔다. 살롱은 17세기 초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개성을 중시하던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그 문화가 활짝 피었다. 살롱은 프랑스어로 ‘거실’을 뜻한다. 주로 부르주아나 귀족들의 사교모임으로 상류 가정의 거실에서 열리던 집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살롱은 단순히 사교모임만을 위한 집회는 아니었다. 살롱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귀족들이 포도주를 즐기며 당대 저명한 지식인들이 당시에 화제가 되던 정치, 문화, 철학 등에 대해 토론을 하거나 담론을 나누었는데, 이러한 집회가 유럽의 살롱에 토대가 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향연'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며, 특정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지식인들의 모임을 토대로 발전한 프랑스의 살롱은 문화를 선도하는 지식인들이 교류하던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당대 지식인들과 음악가 그리고 화가들이 한데 모이는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즐겼으며,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를 열어 함께 공유하였으며, 새로 유입되는 신문화를 먼저 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문학과 미술, 음악 진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루소, 디드로, 볼테르, 몽테스키외, 흄 등 당대에 저명한 지식인들도 살롱에 모여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등 살롱은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살롱의 주재자는 출판업자나 저술가 등을 통해 희귀한 책들을 구하여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과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참여자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활발하게 진행되던 살롱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살롱을 주최하던 귀족들이 해체되면서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살롱을 카페로 개조하는 것이 유행하여 ‘카페(Cafe)’가 살롱의 뒤를 이어 하나의 문화 교류의 공간으로서 유럽의 문화를 이끌어갔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수많은 시인이나 음악가, 철학자, 화가 들이 담론을 하고 그 가운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커피의 각성효과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계몽 사상가와 시민들이 카페에 모여 교류를 하고 서로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1686년 프랑스에 생긴 최초의 카페 ‘카페 드 프로코프’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등이 단골이었으며,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으로 꼽히는 '백과전서'가 기획되고, 이후 완간될 때까지 26년간 계몽 사상가들의 아지트로 활용되었다. 볼테르는 종종 카페 드 프로코프에 앉아 반대편 극장에서 자신의 연극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으며, 보통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의 주치의는 볼테르에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죽을 수도 있다.”라며 만류하였지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커피가 독이라면, 그것은 느리게 퍼지는 독일 것이다.”이러한 명언을 남긴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하면서 커피의 유익함을 증명한 인물로 묘사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문화 모임을 토대로 유럽으로 퍼져나간 문화 살롱은 프랑스에서 꽃 피웠다.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교모임은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들이 함께 하면서 유럽 문화의 발전에 큰 이바지하였다. 이 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살롱 주최의 구심점이 사라져 점점 쇠퇴하게 된 살롱은 카페로 개조되어 유럽 문화를 계승하였다. 그 중 ‘카페 드 프로코프’는 계몽 사상가들의 아지트로 활용되면서 프랑스의 구체제(앙시앵 레짐)을 무너트리는데 큰 역할을 한 카페로 손꼽힌다.

이를 통하여 카페는 단순히 지인들과 모여 소소한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롱을 계승한 카페는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사람들의 지적수준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구체제에 반발하여 프랑스 대혁명을 이끌어낸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는 카페에서는 지식인들이 지역 발전, 혹은 더 나아가 세계 발전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일 날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를 방문하기 보다는 책 한권이라도 가지고 가서 마음의 양식을 쌓고, 지식을 높이면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news@gocj.net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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