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식후에 빠질 수없는 음료로 자리 잡은 원두커피,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음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 커피 음용의 시작은 고종황제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대접받은 것을 커피 음용의 시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와 같은 설은 당시 고종황제가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로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누가 언제 커피를 처음 마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로 조선이 1882년 미국·영국·독일, 1884년 러시아, 1886년 프랑스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조선으로 건너온 각국의 공사관이나 외교관, 혹은 선교사나 상인, 여행객 등 다양한 계층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조선에 전해진 커피에 관해 적은 첫 기록서는 미국의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펴낸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이 책은 1883년 12월에 조선 왕실의 초청을 받아 조선에 온 퍼시벌 로웰이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당시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자세하게 적은 기행서이다. 이 기행문에서 퍼시벌 로웰은 1884년 1월에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에 위치한 별장에서 커피를 마셨음을 기록하였다.

한편 국내 문헌 중 최초로 커피를 언급한 기록은 1884년 3월 27일자 한성순보에 커피를 중국식 한자인 ‘가배(咖啡)’로 표기하여 기록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에 따라 1884년 전부터 조선에서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록으로 남겨진 문헌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 중 커피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은 누구일까?

유길준은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유럽 등을 둘러보고 귀국하여, 1895년에 『서유견문』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유길준이 직접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1883~1884년 당시 커피를 ‘가비(茄非)’라는 한자로 표기하여 기록해놓은 것으로 보아 미국과 유럽에 있는 2년 동안 서양음식과 함께 커피를 접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윤치호는 중국에서 유학하던 1885년 6월에 상해에서 쓴 일기 중 “오후에 나가미와 같이 가서 커피, 당유(糖乳), 유병(乳餠) 등을 사가지고 왔다”,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로써 윤치호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로 우리나라 사람 중 문헌상 커피를 최초로 마신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시기는 조선이 문호개방을 시작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헌 기록상 아관파천이 발생하기 12년 전부터 이미 조선 왕실에서는 커피를 마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종황제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라는 잘못된 설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산업이 점점 커지면서, 이제는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학문으로 전문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커피를 즐기는 소비자들도 커피에 관한 설들을 그저 흘려들을 에피소드나 이야깃거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기록과 사실을 바탕으로 좀 더 진지하게 하나의 역사, 문화로 접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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