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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泉 민병달 선생님을 기리며

기사승인 2019.05.22  15: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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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티저널 이명우 기자 ]“덕촌이지, 잘 지냈어. 내일이 상고회 강의인거 알지?” 길지 않은 전화 한 통화. 매월 2번째와 4번째 화요일 오전 10시 무렵이면 걸려오는 선생님의 전화다.

늘 머리에 두곤 있지만 그래도 종종 잊어버리던 강의 시간을 선생님은 매번 이렇게 일일이 알려주셨다. 그러던 지난 7일, 어버이날을 하루 앞뒀던 그날 선생님의 전화가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오후에 이리저리 알아보니 선생님께서 낙상을 하셔서 병원에 계시단 소식을 들었다.

영면에 드시지 않았다면 오늘도 선생님은 전화를 하셨을 것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선생님의 소천을 보게 될 줄 뉘 알았을까? 이제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니 만보성은 누구와 함께 갈까?

천안의 큰 별이 떨어졌다. 오롯이 천안의 역사와 도학을 전수해 주시던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제 누가 대신할 것인가. 만감이 교차한다. 말로 만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겠다던 다짐이 너무나 허황하다. 회한이 물결치지만 선생님의 숭고했던 뜻을 이어 갈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다.

계절은 눈부시게 푸르지만 이 맑은 날 선생님을 보내는 마음은 그저 어둠뿐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한다.

선생님,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하셨던 선생님. 누구보다 애국하는 열정이 뜨거우셨던 선생님.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하루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던 선생님. 이제 모든 시름은 후학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신실한 불심과 바른 도학이 선생님을 극락왕생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생님의 행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민병달 선생님은 본관은 여흥이며 호는 심천으로 천안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8월 28일 아버지 민웅식과 어머니 전주이씨 이광종 사이에서 삼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김기호 여사와 슬하에 장남 옥기, 차남 홍기, 삼남 혁기 삼형제와 장녀 정기, 차녀 복기, 삼녀 석기를 두고 있으며 6명의 친손자와 친손녀, 6명의 외손자와 외손녀를 두고 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뒤늦게 신학문을 접했던 선생은 1950년이 돼서야 천안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전쟁중이던 1951년 천안업성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5년후인 1956년 중등교사 자격증을 받아 천안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천 선생님은 역사교사로 재직하며 당시 부족한 교과서 내용을 보충코자 직접 연구와 저술 활동을 통해 보다 깊이 있는 역사를 탐구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탐독을 통해 천안을 비롯한 충남 전 지역에 대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갔다. 이는 천안지역 근현대사 대부분이 선생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선생은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 전문가로서 예산군 교육청과 대전시 교육청 학무과장을 거쳐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했으며 천안시 교육장을 끝으로 1991년 정년퇴직 할 때까지 41년을 교직에 봉사하셨다.

중앙고 교장으로 재직 당시 전교조 교사들과 논쟁을 벌이며 학교와 학생들을 보호했던 일화는 지금도 교육계에서 회자되고 있을 만큼 유명한 일화다.

정년이후 선생은 충청남도 교육위원회 교육위원으로 피선되셨고 의장으로 봉직해 충남도 교육에 대한 열정의 방점을 찍으셨다. 이후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천안문화원장, 충남정신발양추진위원회 위원장, 천안발전위원회 부회장, 유관순 기념사업회 이사 등으로 사회사업 활동을 펼치셨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에 마음을 열어 천불사 신도회장을 지냈고 역사를 연구하며 유가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천안향교 원로회장으로 도학과 역사를 연구하는 상고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유학과 역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선생은 상고회에서 조선왕조실록 인물사를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저술해 가며 매월 2회씩 강의하는 등 왕성한 학구열을 보였다. 이로써 지난 2월 마침내 7년간 강의한 내용을 한데 모은 2천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인물사를 국한문 혼용으로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연구하며 애국 애민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선생은 역사 연구에 몰입하며 구한말의 어려운 국내 상황에 심신이 크게 상하셨던 듯하다. 강의 말기 크고 작은 병마와 싸워가면서도 단 한번도 강의를 거르지 않고 마침내 조선왕조실록 인물사 강의를 올해 초 마치셨던 것이다.

선생은 스스로 수가 많이 남지 않았음을 인식했지만 상고회에 조선왕조실록 인명사 이후 대한독립 운동사를 강의할 것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미처 착수에 들어가지 못했다.

선생의 지역사랑과 역사 연구에 대한 공적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실례를 들면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출생지를 밝혀낸 일화가 있다. 선생은 실록에 김시민 장군의 출생지가 가전이란 한 단어를 근거로 그가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을 밝혀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았다.

선생은 국민훈장목련장(1991), 천안시문화상(1987), 충남문화상(1992) 등을 수상했으며 ‘천안삼거리 능소전(천안문화원 1986)’, ‘천안의 민담과 설화(천안문화원, 1998)’, ‘천안과 함께한 역사인물(천안문화원 2005)’, ‘조선왕조실록 상(천안향교, 2014)’, ‘조선왕조실록 중(천안향교 2016)’ 등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인물사(천안향교 2019)’가 있다. 논문은 ‘조선왕조실록 속의 천안 인물’, ‘천안의 정려’ 등 수백편이 있다. 또 천안의 각종 비문 작성에도 참여해 광덕의 ‘호도시배유래기(胡桃始培由來記)’등 불소의 작품을 남겼다. 경주 후인 덕촌 이명우 울며 쓰다(慶州 後人 德村 李明雨 哭 筆)

이명우 기자 mwoo0902@naver.com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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