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  오늘날 맥주의 나라로 유명한 독일에 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582년에 작성된 인쇄물이었다. 그러나 독일인 사이에서 커피는 바로 유행하지 못하였고, 커피의 음용은 약 1세기가 지난 후인 1670년경이 되어서야 국민들 사이에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커피가 독일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늦게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는 당시 국민들이 습관처럼 마시던 맥주의 영향력과 정부의 커피 소비를 반대하는 정책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밤낮의 구분 없이 아침부터 맥주를 마셨고, 독일의 남부 가정에서는 빵과 함께 바이에른식 맥주 수프(Biersuppe)를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하였다. 이처럼 독일인들에게 맥주는 (예전에 우리나라의 각 가정에서 보리차를 흔하게 마셨듯이)수시로 마시는 차와 같은 음료였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가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점점 커피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많은 돈이 외국으로 흘러나가게 되자 당시 정부는 커피의 소비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커피에 세금을 높게 부과하고, 커피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였다.

당대에 많은 의사들은 여성이 커피를 상습적으로 음용할 경우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여성들이 커피를 마시게 되면 피부가 검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하였다. 지금으로써는 어처구니가 없는 유언비어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에서 마시는 커피의 소비를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여성 차별적인 여론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성 차별적인 정책에 대해 당시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ha:1685~1750)는 1732년에 한 여성의 커피 중독에 관한 내용을 담은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를 작곡하여 익살스럽게 표현하면서 당시 여성 차별적인 정책을 간접적으로 반대하였다.

커피 칸타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 아버지가 커피에 중독된 딸에게 커피를 끊을 것을 강요하는 노래를 부른다. 딸에게 커피를 끊지 않으면 산책을 못하게 하고, 스커트를 사주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딸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딸은 다른 건 다 없어도 괜찮지만 커피만은 마셔야겠다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가 최후의 수단으로 약혼자와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고 위협하자 딸은 이 말에 아버지에게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딸에게 이것은 단지 ‘작전상 후퇴’일 뿐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며 약혼자와의 결혼 승낙을 받아낸 후, 예비신랑과의 혼인 계약서에다 ‘커피의 자유 섭취’라는 조항을 써 넣는다. 결국 딸이 커피와 결혼을 다 얻어낸다는 유머가 가득한 내용이다.

이 시대에는 사교 공간이었던 커피하우스에서 수시로 작은 공연들이 열리곤 하였는데, 커피 칸타타는 공연용으로 탄생한 곡이었다. 당시에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커피하우스에서 커피 칸타타를 공연하는 날에는 딸의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파트까지 남자 성악가가 열창해야하는 바람에 공연 중에 더욱 우스꽝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러한 설정은 여성의 커피하우스 출입을 금지했던 당대의 여성 차별적인 정책을 은근히 풍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당대 정부는 커피의 소비를 막기 위해 커피에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각종 여성 차별적인 소문을 퍼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시작된 독일인들의 커피 음용은 관습처럼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독일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맥주가 있다면 나에게는 커피가 있다. 이번 주말 아침에는 바이에른식 맥주 수프 대신 연유와 커피를 넣어 달콤하게 끊인 커피 수프를 만들어 먹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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