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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국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영국의 커피하우스’

기사승인 2019.03.27  15: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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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 오늘날 영국은 ‘홍차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국가이다. 그러나 커피는 홍차보다 영국에 먼저 소개되었으며, 홍차가 들어오기 전 영국에서는 커피의 인기가 대단하였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커피 음료가 각광을 받았다기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커피하우스가 큰 인기를 누렸다. 영국에서 커피에 관해 남긴 첫 기록물은 1598년 출판물로 발간된 커피에 관한 책이었다. 초반에 커피가 영국에 전해졌을 당시에는 귀족이나 소수의 상류층들이 즐기던 음료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커피가 성행하지는 못하였다.

커피가 영국에 전해진 지 한참 후 영국에 생긴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레바논 출신의 유태인이었던 제이콥스(Jacobs)라는 인물이 옥스퍼드 대학의 옥스퍼드 타운에서 영업을 시작한 커피하우스이다. 커피하우스의 이름은 누군가 새로움에 기뻐할 곳(즉, 신문물인 커피를 마시며 기쁨을 찾을 곳)이라는 의미로 ‘some who delighted in novelti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커피하우스가 생긴 이후부터 약 30년 뒤에는 런던에 약 3,000개의 커피하우스가 생길 정도로 영국에서 커피하우스의 인기는 성행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영국의 사회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에는 1642년부터 1660년까지 의회와 군주세력의 대립으로 일어난 시민혁명인 청교도 혁명이 계속되었다. 이 지독한 싸움에서 시민들이 이긴 것을 계기로 영국 내에는 계급에 따라 지배하던 봉건 사회에서 벗어나 시민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민사회’라는 한줄기 빛이 비추었다. 이때 시민들은 정치에 관한 의견을 교류하고 수다를 채울 ‘교류의 장’이 필요했는데, 그 장소로 적합했던 곳이 바로 커피하우스였던 것이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지정된 자리, 계급에 따른 차별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커피하우스는 한때 ‘Penny University(페니 대학)'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입장료 1페니만 지불하면 몇 시간이고 당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토론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커피하우스는 영국 사교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보험·증권·금융업 종사자들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비즈니스 장소의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당시 의사들은 커피가 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고, 상습적으로 음주하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의사들이 커피를 마시도록 권장하자 커피는 술과는 대조적으로 건강에 좋은 음료로 각광받기 시작하였으며, 커피하우스를 주점과 다른 고상한 장소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점점 큰 인기를 누리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나 커피하우스에 열광하는 세력이 있는 반면 커피하우스를 폐쇄하려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커피하우스에서 자유롭게 진행되는 국민들의 토론이나 일부 지식인들의 선동적인 연설은 군주와 기득권층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1676년 말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국민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부를 비방하고, 음해하려는 소문을 유포시킨다는 이유로 폐쇄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을 못 이겨 단 며칠 만에 선포를 취소하게 되었다.

커피하우스의 수난은 또 있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커피하우스가 나날이 인기를 끌자 매출이 급격하게 줄은 주점 운영자들이 커피하우스를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 커피하우스는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남성들이 집을 나가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자 참다못한 여성들이 커피하우스의 운영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내기도 하였다.

당대 커피는 마실수록 깨어있게 하고 정신을 또렷하게 하여 영국인들의 계몽사상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커피하우스는 자유로운 토론과 정보의 교류, 공감대의 형성을 이룰 장소를 제공하였다. 즉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깊은 장소였다.

비록 오늘날 영국에서는 커피보다 홍차가 사랑받는 음료가 되었지만,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펼쳐진 당대 지식인들의 토론을 통해 영국 시민들은 계몽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영국은 국민을 위한 국가가 되었고, 다른 유럽, 미국으로 퍼져나가 우리나라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를 통해 오늘날 민주정치가 계승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니 커피와 커피하우스의 엄청난 공헌에 저절로 감사를 표하게 된다.

박소영 한국커피문화협회 사무처장 news@gocj.net

<저작권자 © 시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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